멘토님. 저는 현재 A 대학교 경영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24살(만 22세) 대학생입니다. 이제 졸업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데 이제 와서 방송 계열에 관심이 생겨서 진지하게 그쪽으로 갈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 중에 현직자의 조언을 들어보고 싶어 이렇게 잇다에 글을 남겨요.
©Alexey Ruban
사실 방송, 문화 계열 쪽에는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이 많았지만 성적에 맞추어 대학교, 전공을 가게 되었고 그대로 흘러가다 보니 벌써 취업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비전공자에 늦은 나이라는 마음이 들어 이제 와서 방송 업계를 꿈꿔도 될지 고민이 많습니다. 주변에 아는 방송 계열의 지인 또한 찾아보기 어려워 취업 정보나 준비 과정을 찾기 많이 힘들어서 방송 아카데미 과정을 들으려고 생각 중입니다.
저는 구성작가를 희망하고 있는데 MBC 아카데미 또는 KBS 아카데미를 가는 게 좋을까요? 멘토님도 아카데미를 추천하시는지, 혹시 저와 같은 비전공자이셨는지 어떻게 방송 계열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멘티님.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겠죠. 하지만 다 잘 될 겁니다.
방송 관련 직종에 문 두드리기를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아니라 구성작가를 생각하는 것도 좋습니다. 각 방송사 프로듀서 선발이 몇 년째 답보상태이기도 하고, 방송 제작에서 가장 중요하고 실력자가 필요한 포지션이 구성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방송 진행자 겸 작가로 일하기 이전 90년대에 출판사, 콘텐츠 투자 및 제작사, 공연기획사, 영화사 등에서 일했는데요. 방송 일을 하기 위한 별도의 준비는 하지 않았고 딱히 계획도 없었습니다. 다만 좋은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을 하기 위해 몸과 영혼을 갈아 부었던 것 같긴 합니다.
IMF 사태로 해고가 많았고, 저에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 또는 작가 테스트 기회를 제공해 줘서 얼떨결에 2000년쯤 라디오 진행자가 되었고, 매거진 칼럼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경비 절감 차원에서) 작가를 겸하라는 조건을 수용하면서 자기 프로그램 작가와 진행자의 1인 2역을 하는 '저비용 중 효율' 인사로 여기저기 전전하게 됐죠. 일반적이지는 않죠.
©Fringer Cat
여기까지 저의 케이스 요약이고, 직간접적으로 보아온 맥락에서 아는 걸 얘기해 볼게요. 멘티님에게 우선하고 싶은 말은 전공은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구성작가들 중에 문예창작과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절대적 비율은 아닙니다. (피디들 중에 신문방송학과나 방송연예과 출신이 많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방송 제작에서 작가는 글만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합적인 구성 능력과 맥락을 잡는 능력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사실상 글 쓰는 피디에 가깝습니다. 가볍게 비유해 보자면, 피디가 제안자이고 작가는 솔루션 제공자라고 생각합니다.
제작 현장에서 구성작가는 스크립트 작성만 하는 게 아니라 섭외나 조사 관련한 협업의 당사자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는 '유연한 인문학적 관점과 의사소통', '왕성하고 빠른 자료 소화력' 혹은 '필요한 정보 해석과 선택 능력'인 듯합니다.
방송 아카데미에 들어가셔서 드라마/시사교양예능/라디오 등 원하는 분야 작가 트레이닝을 거치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작가 지망생들이 방송국에 개인적으로 접촉해 현업에 이르기가 어렵고 새로운 작가로 선택되는 루트는 주로 해당 교육원 선배나 인맥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방송사 이름을 건 아카데미도 나쁘지 않지만 '한국 방송작가협회 교육원'도 괜찮습니다.
대부분 교육과정이 1년에 두 번이라 시기가 맞아야 하긴 하지만 어떻든 통과의례라고 봐야 하고, 밀도 높고 유효한 트레이닝을 주로 협업 형태로 진행하기 때문에 안 거친 사람보다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실무 적응에 유리합니다. 이 밖에도 현업 작가들이 작은 단위의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이 있으니까 넓게 찾아보시고 과감하게 문의하다 보면 맞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공을 들여 공부하고 진심을 다해 기회를 찾고 인내로 기다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리는 건 여전히 변하지 않다는 걸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깊고 넓게 도움이 되고 싶지만 이 정도가 멘티의 질문에 지금 단계에서 우선 드릴 수 있는 답변인 듯합니다. 약간이라도 도움이 된다 싶으면 피드백을 통해 더 발전시킬 수도 있겠죠. 좋은 방향성을 만들어봅시다.
감사합니다 멘토님 비전공자로 고민이 많았는데 용기를 얻어 간 것 같습니다. 역시 아카데미를 가는 게 중요하군요. 길게 답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