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금 장황한 고민을 공유하자니 어디서부터 말씀을 전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끄러운 내용도 있고, 필요 없는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혼란스러워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미리 멘토님께 사과드립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이고 인문 학부생으로 아직 전공이 배정되지 않았습니다 2학년 때 전공이 나뉘어 배정되는데, 저는 그중 국어국문학과 또는 일본학과를 가고 싶습니다. 저는 출판 편집자가 꿈인데요. 정확하게는 일본의 라이트노벨이나 만화를 편집하는 편집자가 되고 싶습니다.
©Gracia Dharma
저는 소설책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단순히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제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도 읽고, 그 반응을 나누는 것이 너무 재밌어서 편집자가 되어 재밌는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재미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되면 편집자보다는 마케팅 업무를 지망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일본의 외서를 편집하면서 한국 독자들이 일본 원서를 읽는 독자들과 거의 유사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멘토님. 원서와 유사한 재미를 역서에서도 느끼려면 더 정확하게 의미 전달 가능한 어휘를 선택하던가 할 텐데, 이 업무는 번역가의 일이지 편집자의 일은 아닌 건지 헷갈립니다. 많이 알지 못해 정보가 아주 부족하지만, 편집자가 하는 일은 출판 기획, 내용 첨삭?(저자가 쓴 원고가 적절한지 파악하고 수정 등을 하는 것), 교정 교열, 더 하면 출판 디자인, 마케팅 업무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원하는 것과 같은 일본에서 이미 출간된 외서를 번역해 내놓는 일이라면 내용 첨삭은 필요 없는 일이고, 교정 교열은 애초에 번역 과정에서 번역가가 하면 되는 것이고(물론 편집자도 하겠지만 국내 도서보다는 일이 적을 것 같고..) 출판 디자인은 편집자보다 전문 디자이너가 맡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가 한다면 미번역된 외서를 번역 출판할 기획하고, 출판 후 마케팅 정도의 업무를 맡을 것 같은데. 만약 그렇게 되면 국내서 편집자보다 일이 적은 만큼 편집자 채용 수도 적어지는 게 아닌지, 그래서 결국 경쟁률이 치솟은 결과를 보이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제가 일단은 일본 장르소설(라이트노벨), 만화 편집자만 노리고 편집자를 준비하고 싶은데요 일본학과를 가는 게 좋을지, 국문과를 가서 일본어를 독학하는 게 좋을지도 고민입니다. 주위에서는 국문과가 유리하다는 소리를 해서요. 아무래도 인문대는 취업하기 어렵다는 소리가 많은 건 사실이라 인문대 학생이 대부분 복수 전공을 하는데요 (상경계 등) 저도 혹여나 출판사 취업에 실패하는 것을 대비해 복수 전공을 하는 게 좋을지도 고민이에요..
덧붙여 편집자에게 컴활 자격증이나 한국사, 토익도 꼭 필요한 스펙일까요? 만약 국문과를 가게 되면 국문과 공부+일어 독학+자격증 및 토익+대외활동까지 다 병행해야 한다는 소린데 이게 가능할지…
장황하게 썼지만 문제는 딱 일본 라이트노벨/만화 편집자의 전망과 경쟁률, 토익과 같은 자격증 공부가 도움이 될지 또 다른 필요한 스펙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두서없이 난잡한 글이라서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목표가 명확한 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도 좀 더 구체적일 수 있겠습니다. 대신 목표가 너무 명확해서 입구가 너무 좁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경쟁률을 물으신 건 아마 그 때문일지 모르겠네요.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부딪친 문제를 분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 하는 시도는 편집자로서 대단히 좋은 자세입니다. 출판계 각 포지션(디자이너, 마케터 등)에 따른 주 업무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대로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포지션이 본인의 목표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아래는 보내주신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저는 일본 라이트노벨, 만화 분야 전문 편집자가 아니라서 전문성은 떨어질 수 있으니, 제 의견은 참고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Miika Laaksonen
첫 번째 질문에서 말씀하신 대로 일어 번역서의 경우 번역은 번역자가,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마케팅은 마케터가 합니다. 각자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편집자는 무엇을 할까요? 편집자는 두 가지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편집자는 한국어 전문가이자, PM(프로젝트 매니저)입니다.
1) 한국어 전문가
번역자는 일본어 전문가이며 한국어 능력은 일반인 정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의 직역 혹은 비문을 써서 의미가 통하지 않거나, 문장에 번역투를 남발해서 읽기 거슬리는 경우가 많지요. 이 역할은 첨삭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단행본 출판사에서는 편집자를 뽑을 때 교정 테스트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국문과에서는 정서법을 배우므로 출판사에서 국문과 전공자는 어느 정도 신뢰하지만, 출판사의 교정교열지침을 익히면서 배워가야 합니다. 회사가 타 전공 신입 편집자에게 정서법을 모두 가르치기는 어렵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 배우고 입사해야 합니다.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거나 국문과 정서법을 독학하거나 SBI,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등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탈자를 바로잡는 교정은 배우는 것보다 꼼꼼한 성격이 중요합니다. 그런 성격이 아니라면 꼼꼼하게 작업을 하도록 변해야 합니다.
2) PM
PM은 애초에 기획한 일정, 인력, 자원을 사용해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합니다. 번역자, 디자이너 등 모두 각자 분야의 전문가지만, 각 프로젝트의 기획을 명확히 파악해 방향에 맞게 진행하도록 관리하는 일이 편집자의 전문 업무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번역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언어 능력, 디자인 의견을 제시하거나 기획 방향에 맞게 수정하도록 제안할 수 있는 디자인 안목은 필수입니다(이 경우의 안목은 센스가 아니라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일정 관리, 리더십, 문제 해결, 소통 등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분야 대표적인 출판사로 서울문화사, 대원씨아이, 학산미디어 3곳과 AK커뮤니케이션즈를 꼽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편집자 채용 사이트인 북에디터(bookeditor.org)나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이 네 곳의 구인글이 나옵니다. 신입 구인 공고가 아주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신입도 경험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쟁률이 높은 것보다 오히려 버티는 사람이 적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버티는 사람이 적다는 건 일의 강도가 높거나, 기업과 노동자가 서로 생각하는 비전이 다르거나, 노동자가 예상한 자신의 역할이 실무와 다르거나, 대우가 열악하거나 하는 등 뭔가 생각지 못한 사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일이 명확히 어떤 역할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공고를 자세히 읽고 필요한 역량을 찾아보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합니다. 아르바이트 구인도 하고 있으니 미리 관련한 경험을 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Waldemar Brandt
두 번째 질문은 제가 첫 번째 질문의 답에서 드린 내용과 일부 맞물리네요. 다만 출판사 취업에 실패하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 다른 직종으로 취업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하기 위한 전공 방향은 제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사회생활 15년 차로 서류심사나 면접 시 어떤 사람을 뽑겠는가에 대한 면접관으로서의 기준은 있지만, 취준생의 전공 선택에 대한 조언은 제가 드리기 어렵습니다. 이건 최근 사회생활을 시작한 1~3년 차 선배가 가장 좋은 조언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각 출판사에서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추측할 게 아니라, 구인을 많이 하고 있으니 아르바이트나 구인 시 지원하면서 직접 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편집자에게 필요한 스펙은 따로 없습니다. 타 출판사 인턴 경력이나, 최소 학교 교지 제작 등 실제 책이나 잡지를 만드는 경험을 중요시합니다.
©Matt Popovich
일본 라이트노블과 만화 시장의 전망이 어떨지는 명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전문 분야가 아니니 제가 하는 전망도 큰 의미는 없겠습니다만, 주요 3사의 2018~2020년 매출 추이를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는 전자공시시스템 dart 사이트에 재무제표가 공개됩니다. 여기서 간단하게 매출만 살펴보겠습니다.
서울문화사
2020 40,771,983,948원
2019 49,039,492,531원
2018 39,287,820,564원
대원미디어
2020 266,227,466,155원
2019 191,545,738,073원
2018 163,374,644,900원
학산문화사
2020 31,267,622,908원
2019 27,201,725,771원
2018 27,094,404,963원
대형 3사가 시장을 거의 나눠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매출 수치는 각 출판사의 매출 규모뿐만 아니라 대략적인 업계 규모까지도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2018년 3사 매출 합계는 약 2천 3백억 원에서 약 3천 3백억 원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년 만에 150% 성장이면 엄청난 성장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이런 매출액 비교는 추측일 뿐 정확한 분석은 아닐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이렇게 성장할 것인지는 알 수 없으며, 이게 일본 라이트노블과 만화 시장의 성장으로 인한 매출 증대 효과인지는 재무제표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위에서 말씀드린 이 주요 출판사의 공고에서 어떤 포지션에 구인을 많이 하는지 알아본다면, 그 회사가 어떤 사람을 원하고 앞으로 더 투자하려 하는지 파악하기 쉽겠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시장에서 어떤 분야, 어떤 트렌드가 있는지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도 분명 취업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분야에 대한 비전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목표한 분야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조사하고 분석해 보시면 많은 성장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시대가 변하고 있는지 시장과 산업 측면에서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진지하게 알아보시길 권합니다.
항상 좋은 날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명확하게 답변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정교열에 필요한 한국어 능력, 번역 검토을 위한 외국어 능력,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보겠습니다. 구인구직 공고에서 제가 원하는 분야를 다루는 출판사의 공고에도 지원할 기회를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무 경험이 중요한 것 같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