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1살의 5년 차 마케터로 영문과 졸업 후 대행사부터 인하우스까지 다양한 회사를 거치다가 현재는 그래도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중견기업의 마케팅팀 파트장을 맡고 있습니다.
20대부터 광고/마케팅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면서 마케터로서 함께 일하는 동료, 임원진에게 인정받고 나름 상도 받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마케팅의 다양한 요소들과 상황들로 인해 업력이 쌓여도 이것이 전문성과 연결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전문직으로 방향을 트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Sergey Zolkin
생동차로 합격을 한다고 해도 만 33~4살에 신입 입사를 하게 되기에 나이가 장애물이 되진 않을지, 변리사와 큰 연관이 없는 5년의 마케터 경력에도 불구하고 변리사를 도전하는 게 괜찮을지 문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변리사를 생각한 이유는
첫째, 전문직으로서 법을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 직업으로 연차와 전문성이 비례한다는 점
둘째, 비슷하게 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로스쿨 진학 대비 기회비용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로스쿨 진학 없이 시험을 칠 수 있기에 1차는 직장을 다니면서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10년 -15년 후에는 스타트업 투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요. 마케터로서 제 업력과 변리사 자격증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제 고민사항은 변리사 시험을 합격한 이후에 해도 되는 문제들이겠지만 5년간 쌓아온 커리어에서 아예 다른 길을 가는 도전이고 적지 않은 기간과 비용이 투자될 시험이기에 변리사 분께 고민을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껏 잇다에서 여러 진로상담을 드렸지만, 이번 상담은 아주 선택하기 어려운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이 드네요. 제가 갈림길 옆에서 감히 조언하는 것이 부담이 될 정도로 여러 번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이었습니다. 질문을 여러 번 읽고, '제가 그 상황이라면'으로 이입도 해보고 내린 '저의 결론'을 써 내려가니, 한번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미 이루어 놓은 것들이 있기에 더욱 진로를 꺾기 어려운 무게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 놓은 것을 다른 방향으로 발현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업력이 쌓여도 이것이 전문성과 연결되는가에 대한 회의감" 정도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직업)이라면 이것을 평생.. 아니 적어도 정년(60세)까지 입고 있을 자신은 없습니다.
더욱이 5년 시점에 보이는 한계점도 점점 시간이 지나면 뚜렷해질 것이고, 한살이라도 어려 머리가 쌩쌩할 때 자기 가치를 올리는 무언가를 하는 것이 유리하니까요. 이제 그 '무언가'가 [변리사인가, 또 가능할까, 돼도 괜찮을까] 가 숙제인 겁니다.
©Trent Erwin
변리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의 정보는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가까이 나무위키만 봐도 잘 나와 있어요.(현업에 있는 제가 봐도 꽤나 정확합니다. 심지어 연봉까지)
멘티님이 변리사를 생각한 이유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첫째, 전문직으로서 법을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 직업으로 연차와 전문성이 비례한다는 점 : 반은 맞고, 반은 틀림
-전문직으로서 자기 생각과 결정과 판단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단, 연차와 전문성이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전문직은 직급이 없어서 커리어(경험)로 말하기에 어디서 무엇을 경험했는가가 본인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변리사 초반 3년에 어디서 누구와 일했는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고요. 마인드셋(이건 선천적인가.....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장기적으로 굉장히 중요했었습니다.
둘째, 비슷하게 법을 다루는 변호사로서 로스쿨 진학 대비 기회비용이 적은 편 : 맞음
사실, 변리사 시험이 가성비가 좋습니다. 시간이 짧고 로스쿨 대비 투자 비용도 적습니다. 단점이라면 지식재산소송을 '단독'으로 못한다인데, 1) 지식재산소송은 대한민국에서 대형 5대 로펌이 실질적으로 거의 다 하는 희소한 사건들이고 2) 한국 특성상 소가 자체가 낮습니다. 미국같이 몇천억이나 조단위 소송은 나오지 않고, 몇십억 정도 소송만 해도 큰 편입니다.
더욱이, 실제 소송 분쟁이 있으면 근처 변호사와 함께 협업하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즉, 공식적으로 법원에서 대리인으로 되어 있지 않을 뿐 실질적으로 자문 역할로써 수행을 합니다. (약간 첨언하면, 저희 회사 특허 법인은 변호사님이 같이 계셔서 함께 분쟁업무까지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로스쿨 3년+a 와 학비 vs 변리사 시험 2~3년 내 합격'의 비교가 되는 거죠. 물론 꼭 붙으셔야 합니다. 붙으면,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소송에 뜻이 있고, 명함에 변호사가 찍혀야 한다, 또는 지식 재산 말고 다른 것도 할 생각이다 라면 변호사에 1표입니다)
셋째, 10~15년 후에 스타트업 투자 관련된 일을 할 계획인데 변리사 자격증이 도움이 됨 : 맞음
여기까지 생각하셔서 놀랐습니다. 이 영역은 저희 업계에서도 고부가가치이고, 사실 다들 쉽게 못하는 부분입니다. 어쩌면, 멘티님의 경험들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요.
출원-등록, 분쟁의 전통적인 업무가 있고, 절세나 가치 평가 등 금융과 연관된 영역이 있으며 나아가 투자 영역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액셀러레이터나 VC에 변리사분들이 진출해있기도 합니다.(저희 동기도 VC에서 일하는 중인데 나중에 변리사 합격하시면 소개해드릴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바라보시는 그쪽이 고부가치입니다.
©Philippe Bout
딱 2년만 잡고 하십쇼. 생동차로 간다는 각오로 하십쇼. '이 시험 3년안에 붙는다'라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마인드로 하면 장수합니다. 저는 A대 변리사반이라는 수험생들 모인 공간에서 공부하며 합격하는 방법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또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합격하는 방법을 못 찾았습니다.’ 공통점이 없고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합격하지 않는 방법은 있습니다. 공통되고 일관됩니다. 그리고 그게 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압니다. 자기합리화하고, 고집 있고, 책상 앞에 있기보다 산책하고, 친구 경조사 다 찾아가고, 컨디션 조절 안 하고 등등 말이죠. 사실 다 알죠. 말을 안 할 뿐.
수험 기간은 자기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가는 생체실험의 기간이면서 동시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배제해나가는 수양의 기간입니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속에 시험일이 있어야 하고, 합격이라는 기쁨보다 재수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이 더 큰 게 변리사 시험 합격입니다.
제가 합격할 때와 그 이후 합격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저만의 통계 느낌(?) 상 합격자들 나이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고 2~3년 정도 수험 기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만 32살에 시작해서 30중반에 합격예정이면 늦은 것은 아니라 봅니다.
로펌에서는 능력과 경험을 보고, 지금 마케터로서 쌓은 경험이 '만 34~35살의 신입이라는 약간의 장애물들을 가릴 것이라 봅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기대를 받을 수 있어서 부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변리사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라 마케팅에는 무지몽매)
5년 동안 인생 허비한 것도 아니니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전혀 마이너스가 아닙니다.
'할 수 있어' 따위 드라마 대사 같은 말보다는 보다 진지한 고민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변리사+인 부분이고,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참고로, 가족 빼고 연락처 전부 삭제 + 삭발이 정신력 강화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전문직이 되면 인생이 조금 편안해집니다. 제 글이 진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그럼 업계에서 뵙겠습니다.
변리사님 진심으로 고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원에서 입문 강의 들으면서도 변리사라는 업의 환경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단순하게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변리사님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