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걸어가기
『순 마흔하나 호매실 IC 근처 고속도로를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는 신고, 급히 출동 바람』
『순 마흔둘이 출동』
어둑어둑해지는 초저녁 무렵, 무전으로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사건 처리를 하고 있던 우리를 대신 해 출동했던 최 SP가 얼마 후 남루한 행색의 할아버지를 파출소로 모시고 왔다.
할아버지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를 반대 반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가고 계셨다.
아이코, 맨발에 슬리퍼를 신으셨다. ㅠㅠ
"어르신, 성함이 뭐예요? 어디 사세요?"
"......"
귀가 어두우신지 잘 못 알아들으셔서 할아버지 눈을 보며 큰 소리로 다시 여쭈었다.
"성함이 뭐예요?" "으응, 이 팔복"
"어디 사세요?" "뭐?", "어디 사세요?" "으응, 강원도 양구"
하시더니
갑자기 파출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신다.
"어르신, 어디 가세요?" 급히 어르신을 붙잡았다.
"여기 앞에 뚝방 길로 쭈욱 가면 집에 갈 수 있어" 자꾸 뿌리치며 나가려고 하신다.
"어르신, 여기는 수원이에요. 저희가 집 찾아드릴 테니까 잠시 앉아 계세요."
"수원이라고?" 잠시 못 미더운 눈치를 보이시더니 이내 파출소 한 켠 소파에 앉으신다.
70 노인이 고속도로를 걷고 있었으니 분명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실 것이다. 그리고 고속도로로 진입한 지 한참 되었다면 진작에 신고가 되었을 터였다.
할아버지 성함과 추정되는 나이로 조회를 해보니 양구에 사시는 분은 없고 근처에는 화성에 사시는 분이 한 분 나온다.
"어르신, 화성에 사세요?" "아녀, 강원도 양구 살어"
"어르신, 제가 주머니 좀 볼게요" 하고는 주머니를 만져보니 무언가 가득 들어 있어 꺼내보니 캔 깡통이 2~3개 나온다.
"어르신, 이걸 왜 가지고 다니세요?" "이이, 키로에 600원이여"
아이고, 아마도 깡통을 주워서 돈벌이를 하시는 모양이다.
깡통을 다 꺼내고 나니 낡은 휴대폰이 하나 나온다. 최근 통화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했다. 다행히 받는다.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다.
"네, 저예요, 어쩐 일이세요?"
"네 안녕하세요? 호매실 파출소예요. 혹시 이 팔복 할아버지 아시나요?"
"아, 제 친오빠예요"
"네, 어르신이 길을 잃으신 것 같아요. 사시는 데가 어디세요? 모시러 올 수 있으세요?"
"아이고, 저는 따로 살아요. 여긴 경남이에요. 수원에 친척이 있는데 갈 수 있는지 알아보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조금 있다가 연락이 왔다.
"친척이 전화가 안돼요. 오늘은 거기서 재워 주시고 내일 가면 안될까요?"
"아, 네. 저희도 어떻게 방법을 찾아보고 연락드릴게요"
다시 다른 번호로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호매실 파출소예요. 이 팔복 할아버지 어떻게 아시는 사이신가요?"
"아, 제가 돌보고 있는 분이세요. 거기가 어디 있는 파출소예요?"
"수원입니다. 할아버지 길을 잃으셨는데 모시러 오실 수 있나요?"
"네, 제가 모시러 갈게요. 화성이라 조금 시간이 걸려요."
"네, 괜찮습니다. 저희가 잘 돌봐 드리고 있을게요."
전화를 받으신 분은 노인들을 돌보는 생활보호사 선생님이셨다.
할아버지는 강원도 양구가 고향이시라고 했다. 자식들은 없고 노부부가 화성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건물에서 함께 사시다가 2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홀로 외로이 지내신다고 한다. 나라에서 돈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운동삼아 하신다며 동네를 돌며 깡통을 주워다가 고물상에 파셔서 용돈벌이를 하신다고 했다. 귀가 어두우실 뿐이고 정신이 또렷하시다고 하는데 집도 기억 못 하시고 고속도로를 하염없이 걷고 계셨던 것을 보면 치매가 오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는 길이셨을까? 그리운 고향으로 가고 싶으셨을까?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반대방향으로 걸으셨을까? 고단한 몸을 끌며 끌며 기억의 언저리를 붙잡고 고향집 뚝방길을 할머니와 함께 걸었던 때를 추억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상황을 자세히 설명드리고 인계해 드리면서 치매 검사를 받아보시기를 그리고 경찰서에 치매노인 위치추적기도 신청하셔서 활용하시기를 당부드렸다.
가족분들께도 생활보호사 선생님이 댁으로 잘 모시고 갔다고 알려드리고 112 상황실에 조치결과를 보고하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늙으면 다시 어린애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고단한 세상살이에 몸과 마음에 달라붙은 모진 세파의 흔적들을 모두 털어내고 싶어서는 아닐까? 치매라는 것이 몹쓸 병이 아니라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몸부림치며 사는 것을 그만 끝내고 그저 배부르면 즐겁고 아프면 우는 그런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본능은 아닐까?
어르신이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즐겁게 천수를 누리셨으면 좋겠다.
저녁을 한사코 드시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는데 그래도 요기를 하시게 했어야 했다는 후회와 자책이...ㅠㅠ
예전에 들었던 노래가 생각나서 올린다. 리턴 투 더 이노센스(순수에의 귀환) / 이니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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