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회사에서 전문의약품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만 3년 차이고 작년에 승진을 했습니다. 다만 회사에서 저의 커리어 방향이 보이지가 않아서 이직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Mike Kononov
지금 상황에서 타 회사의 중고 신입으로 입사를 하는 게 나을지 경력사원으로 이직을 진행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됩니다. 더불어, 사실 영업이 제 노력과 의지보다는 나의 담당 지역, 거래처 상황 등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매출이나 성장이 이뤄지기에 영업으로 쭉 직무를 살려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 능력으로 인한 성장인지 상황에 따른 운인지가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더불어 계절이나 코로나 특수와 같은 상황에 의한 변동이 크다고도 생각하고요.
멘토님의 이직 사유와 더불어 앞으로 어떤 어떻게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싶으신 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약 1년 전에도 질문 주셨는데 다시 질문 주셔서 반갑습니다 :) 그 사이 멘티님도 만 3년 차의 영업사원이 되셨군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지요. 주신 질문에 대해 답변드려 보겠습니다. 늘 그랬듯, 저의 답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드리는 것이랍니다.
©LYCS Architecture
우선 이미 만 3년 차 영업 사원이시라면, 다른 기술을 배워서 완전히 커리어를 틀지 않는 이상 신입으로 지원하긴 어려우실 겁니다. 그 사이 연봉도 오르셨을 테고, 신입 때에 비하면 마인드 셋도 굳어졌을 테니 직원을 뽑는 입장에서 신입에게 기대하는 부분을 멘티님에게선 찾을 수 없을 것이니까요.
만 3년을 일하셨다면 오히려 경력 이직을 하기 좋은 시점일 겁니다. 채용 트렌드도 신입보다는 경력에게 유리한 시점이고요. 다만 지난번 질문 때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직과 동시에 직무까지 변경하는 것은 새로운 학위를 따거나 기술을 배우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비슷한 업계의 같은 직무, 그리고 좀 더 나은 회사로의 이직을 목표로 삼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외국계 제약회사나 같은 헬스케어 업계의 영업 직무가 지원하기 적합할 것 같습니다.
자신의 성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원래 어려운 일입니다. 본인의 ‘업’의 본질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시고 자신의 세일즈 데이터를 분석해 보세요. 영업 사원으로서 성과가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있으시다고 했는데요. 저도 영업을 하면서 늘 생각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실제로도 비즈니스의 결과를 견인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와 담당 품목의 비즈니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노력과 실력에 비례해서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시장 상황이나 운에 의해서만 실적이 나온다면 회사가 왜 영업 사원을 뽑을까요? 내가 회사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회사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분명 회사에선 멘티님 같은 영업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멘티님을 직원으로 두고 있는 것이겠죠.
저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직접 고객을 만나며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이에 기반해 다양한 활동으로 고객의 행동을 변화시켜 세일즈를 성장시키는 것이 영업 사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객의 pain point를 찾고, 우리 제품 혹은 우리 회사 서비스로 그 포인트를 해결하고, 고객의 unmet needs를 충족 시킴으로써 세일즈의 성장을 이룬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이러한 정의는 저 역시 회사에서 일하면서 선배들에게 듣기도 하고, 리더들에게 듣기도 하고, 실제로 체감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강의 플랫폼이 잘 되어 있어서 영업 관련된 해외 강의도 들어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멘티님이 자신이 하는 업을 정의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사실, 영업뿐만 아니라 어느 직무던지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을 정의하기 쉽지 않습니다. 주변에 영업이 아닌 다른 직무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잡다한 일을 할 때 회의감이 든다고도 하고, 자신이 어떤 성과를 내며 일하고 있는지 딱히 관심 갖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특히 KPI가 명확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경우). 이렇듯 영업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그 업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직을 생각 중이라면 꼭 필요한 마인드셋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업 특성상 세일즈를 내기 위해 잡다한 일부터 중대한 일까지, 활동 영역이 다양하다 보니 어떻게 실적이 나왔는지 분석하는 게 힘들 수 있지만 최근 1년, 3년 세일즈 데이터를 보시면서 어떤 요인에 의해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한번 제대로 분석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Vladimir Kudinov
전문의약품의 세일즈가 잘 나온 시점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신규 고객이 창출된 경우 (예 : 우리 제품을 쓰지 않던 의사 선생님이 새로이 쓰기 시작함)
2) 경쟁사 마켓쉐어를 빼앗아온 경우 (예 : 기존 고객이던 의사 선생님이 비슷한 적응증의 경쟁 제품 대신 우리 제품을 씀)
3) 외부 요인에 의해 시장이 커진 경우 (예 : 고객이 출연한 유튜브 조회 수가 많아지고, 환자가 많아져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쓰게 됨)
4) 기타 요인 (예 : 해당 월에 병원이 도매상에 많이 주문한 경우. 이럴 경우 다음 달 세일즈가 빠진 걸 보면 분석 가능)
사실 외부 요인은 언제나 우리의 활동과 함께 작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성과의 공이 100프로 외부에 있다고 설명할 것인지, 좋은 시장 상황에서 나도 함께 노력을 들였기 때문에 좋은 성과가 나왔다고 할 것인지는 표현하기 나름이라, 어느 정도 포장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세일즈가 줄어든 시점은 아마 반대가 되겠죠. 해당되는 요인을 찾고, 그 요인을 이뤄내기 위해 멘티님이 당시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분명 고객이 나에게 했던 말이나 병원 상황들이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멘티님이 어떤 활동을 해서 그런 좋은 성과를 냈는지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사실 이런 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좋은데, 생각보다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해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긴 합니다. 이것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계속 시장 상황에만 원인을 돌리게 되고, 종국에는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어려워지죠. 저도 제가 설명 가능한 선에서 말씀드려봤는데 이미 메티님이 알고 계신 부분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Ostap Senyuk
제가 이직해온 이유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A에 있으면서 신입 사원 때부터 약 5년 가까이를 한 제품을 담당해 계속 같은 시장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회의를 할 때 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이미 예전에 해봤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고인물’이 되는 것 같았고요. comfort zone에 더 이상 머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같은 회사 내의 다른 사업부에 기회가 있다면 부서를 옮겨보고 싶었으나 회사 파이프라인 사정 상 그게 불가능하게 되어,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고요. 의료기기 업계는 제약업계와 비즈니스 성격이 또 다르다는 이야길 들었던 터라 이쪽으로 지원해 오게 되었습니다.
이직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이 낸 성과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잘 정의하고, 이력서와 면접에서 녹여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여러 질문을 주셔서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이직 준비하시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또 질문 주세요.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