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님. 저는 문과 전공이지만, 기술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으며 IT 전문 변호사가 되는 꿈을 세웠습니다.
©Tingey Injury Law Firm
멘토님께서 보시기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분야 포함 IT 산업에서의 변화가 변호사 업무에도 영향이 있을까요? 앞으로 이러한 기술 발전이 법 분야에서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킬지도 궁금합니다. 관련 전공 대학원에 먼저 진학하는 것이 좋을지, 로스쿨 입학해 기술적인 분야에 추가적으로 공부를 병행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멘토님께 진로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멘티님.
구체적으로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서 제 소개를 조금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사법시험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으며, 로펌에서 일하는 동안 주로 공정거래 관련 자문과 소송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IT 관련 업무를 다루어 본 경험은 많지 않으나, 공정거래 분야에서도 AI, IoT, 블록체인 등 IT 기술과 관련된 이슈가 많아서 제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영향을 피부로 느끼고 있고 앞으로 영향이 더 늘어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선, IT 기술이 변호사가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외국고객의 국내 사건을 수행하거나, 국내 고객의 외국 사건을 수행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문서 번역입니다. 예를 들어, 국내 고객이 EU나 미국에서 기업결합신고를 하려면 국문으로 작성된 문서를 영문으로 번역해서 제출해야 하지요. 예전에는 문서 번역을 사람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선 AI 번역기로 번역 작업을 한 뒤에 이를 검수하는 식으로 업무 방식이 변했습니다. 앞으로는 아예 검수 작업 없이 AI 번역기로 번역 작업을 완전히 대체할 예정입니다.
한편, 변호사 업무에서 Data base의 활용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로펌들은 예전에도 Data base를 구축해서 업무에 활용하고 있었는데, 기존에는 과거 자문사례들을 단순 검색하는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검색에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해서 기초적인 리서치 작업까지 마친 상태로 결괏값이 나오도록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되면, 변호사들은 AI가 산출한 초벌 리서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아낄 수 있게 될 겁니다. 대형 로펌들은 주로 자체 Data base를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미래에 대비하고 있는데, 내부적인 resource가 충분하지 않은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를 위해서 구독자에게 고도화된 리서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각 국가의 법령 업데이트 내용을 실시간으로 정리해서 제공하는 서비스, 각 국가의 기업결합 신고의무를 초벌 분석해 주는 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IT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법률자문 업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공정거래 분야에서는 최근 알고리즘에 의한 행위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광고 노출을 결정하는 업무를 알고리즘으로 자동화했는데 그 결과 해당 사업자 자신의 서비스가 다른 경쟁사들에 비해서 더 자주 광고 노출이 되었다고 합시다. 이때 그 사업자의 행위가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할 것인지, 아니면 직접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한 결정이었으니 위법하지 않을지 이런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빅데이터와 관련하여서는 Data privacy 관련 규제가 계속 생기고 있고 이에 대한 자문 업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규제와 그에 대한 자문 수요가 많습니다. 각 로펌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 생기고 있는 법률자문 수요에 대응하고자 새로 팀을 만들고 조직을 개편하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꽤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요?
©Maarten van den Heuvel
기술 발전이 변호사의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어디까지 바꿀 것인지 예단하기는 이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변호사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변호사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발생할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독점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호사 직역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상당 부분 기술로 대체되고,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만 남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무를 하는 개인 변호사 시장은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이고, 이런 단순 업무를 자동화해서 제공하는 법률 플랫폼이 그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복잡하고 중요한 사건에 대한 수요는 남아 있을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로펌은 살아남을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 10년 정도 안에 가시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많은 변호사들이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리걸 테크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업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10년 후에는 성공한 업체들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Towfiqu barbhuiya
IT 전문 변호사가 되려면 IT 관련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에 취업해야 합니다. 단순히 관심만 갖고 있다고 해서 업무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즉, IT 전문 변호사가 되려면 우선 IT 업무를 활발히 다루는 대형 로펌에 취업하거나, IT 업무에 특화된 부티크 로펌에 취업하거나, IT기업의 사내 변호사로 취업해야 하지요.
참고로 요새는 IT 기업 사내 변호사들의 전문성이 대형 로펌 변호사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Google, MS, Amazon, Apple과 같은 글로벌 IT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네이버, 카카오, 토스, 두어 나무 등 국내 기업의 사내 변호사도 굉장히 좋은 진로입니다.
예전에는 절대다수의 변호사가 문과 출신이어서 변호사를 채용할 때 굳이 배경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이공계 출신 변호사가 상당히 많고, 심지어 IT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변호사도 드물지 않습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취업 가능성은 높이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이 정도로 IT 업무에 관심이 많고,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경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분이 지금 IT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가성비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IT 대학원 경력이 있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로스쿨 재학 중에 졸업 후 취업시장에서 통할 만한 일반적인 스펙(나이, 성적, 수상 경력 등)을 최대한 높게 만들고, 꾸준히 IT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입니다.
팁을 한 가지 드리자면 지금 로스쿨에도 ITC 관련 연구를 하는 교수님들이 엄청 많습니다. ITC 관련 연구소를 개설한 로스쿨도 굉장히 많고요. 로스쿨 재학 중에 ITC 법률을 다루는 교수님이나 연구소와 접촉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이렇게 스펙과 경력을 관리한 뒤에 로스쿨 졸업 후 대형 로펌, IT 부티크 또는 IT기업에 입사하시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IT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충분한 답이 됐을까요?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또 잇다에 글 남겨 주세요.
구체적이고 진솔한 답변에 감동했습니다. 보내주신 답변 덕분에 고민의 방향이 명확해진 것 같아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업무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인 변화들과 생각들. 멘토님 답변이 아니었다면 접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친절한 답변과 조언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