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티님. 진로에 고민이 많은 경제학과 4학년 멘티입니다. 최근 법조인을 꿈꾸게 됐는데 이제 막 관심을 가진 터라 아는 것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멘토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로스쿨에 지원하기 전에 법학이 저와 맞는지부터 알아보려고 합니다. 수업에서 KIKO1) 소송과 관련된 글을 읽으면서 금융 및 법학의 전문성을 쌓아가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멘토님이 생각하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자질과 금융 법조인의 직무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가능하다면 멘토님은 어떠한 계기로 법조인이 되기로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SKY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한다면 로펌에 들어갈 때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지 현실적인 상황이 궁금합니다. 경제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다 보니 학점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거든요. 멘토님이 경험하신 바로 SKY 외의 로스쿨 졸업생이 대형 로펌에 들어갈 확률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감사합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려요.
1) KIKO : 외환파생상품 이름.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고자 환율변동의 하한(knock-out)과 상한(knock-in)을 정해 놓는 외환파생상품. (편집주 : 국내에서는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시, 키코사태로 불리며 크게 주목 받았다.)
안녕하세요, 멘티님. 제 소개를 먼저 하는 것이 답변 드리기 쉬울 것 같습니다. 저는 법학대학에 입학하고 로스쿨이 도입되기 전인 2009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후 사법연수원을 수료, 현재 법무법인 T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법학을 전공했고 사법시험을 통해 변호사가 되었기에 로스쿨을 진학하고 싶은 멘티님의 진로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래서 조언이 다소 부정확하거나 미흡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법조인이 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사실 저는 반수를 했습니다. 첫 대학에서 제 전공은 사회계열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회학, 정치학, 외교학 등에 두루 관심이 많았거든요. 저는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나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진로로는 기자, 교수나 연구원, 혹은 시민단체 활동가 정도였고요.
저는 법학이 깊이 없는 실용 학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법학을 공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수를 하면서 수능 결과가 나왔는데, 전공을 유지할지 다른 학교에서 다른 전공으로 새로 시작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죠. 그때 먼 친척이신 대학교수님께 고민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학부에서 공부할 땐 법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학 가서 법을 공부하고 귀국 후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법학의 매력과 힘을 제대로 느꼈다고 말씀하셨죠.
법학은 생각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최소한의 규칙인 법률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법학은 사회에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더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사회를 이끄는 힘은 가졌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법과 변호사란 무엇일까요?
법은 사회를 움직이는 큰 지렛대입니다. 작은 목소리로 큰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죠. 그 생각에 저는 전공을 법학으로 바꾸게 됐습니다. 실제로 법학을 공부하면서 꽤 재미를 느꼈고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시험에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거치면서 더욱 보람과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법학은 법률에 사실관계를 대입해 결론을 내는 3단 논법에 따릅니다. 논리적으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사실관계를 풀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저는 이런 사고 방법이 좋았습니다. 그 사고로 현실적인 문제에 판단을 제시하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과 대법원 판례 등을 분석 및 적용하며 다양한 의견이 충돌되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논리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도 재밌었고요.
변호사가 돼서 4년의 실무를 겪어보니 제가 꿈꿨던 모습과 현실은 본질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변호사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법률적인 논리를 구성하여 의뢰인을 위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사람입니다. 꿈꾸던 역할과 비슷해서 저는 상당히 만족하며 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로펌에는 송무와 자문 영역이 있습니다
저는 로펌에서 일하면서 민사소송, 형사소송, 인수합병, 경영권분쟁, IT, 방송 통신, 개인정보, 공정거래 분야의 업무를 경험했습니다. 2년 전부터는 공정거래 업무를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로펌의 업무영역은 크게 송무와 자문이 있습니다. 송무란 법원, 중재 기관, 수사기관 등에서 이뤄지는 소송, 중재, 수사 절차와 관련된 업무를 말하고 자문이란 소송, 중재, 수사 등의 절차를 전제로 하지 않는 모든 법률적 검토와 금융, 주식, 부동산 등의 거래 절차를 맡는 업무를 말합니다. 공정거래는 송무와 자문의 성격 모두를 가진 분야죠.
변호사의 역할은 업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선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 법률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야기에 경청하며 의뢰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야 합니다.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빨리 핵심을 파악하는 이해력이 중요합니다. 또 좋은 변호사는 빠른 상황 분석 후 대응 논리를 구성하여 법원, 중재 기관, 수사기관 등의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죠. 논리적인 분석력, 정확한 판단력, 말과 글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표현력도 필요합니다.
송무 변호사라면 여기에 더해 전체 사건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시각도 중요합니다.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끈기와 집중력, 그리고 논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승부 근성도 필요합니다.
자문 변호사라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춰 거래를 진행할 수 있는 순발력이 중요합니다. 추가로 거래의 본질과 당사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경영, 경제적 식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협상력도 필요합니다. 또 외국어로 업무 처리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전문 지식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는 법조인이 되고 나서 체득할 수 있기에 필요한 자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변호사도 분야별로 필요한 지식이 다릅니다
공정거래 분야는 경제 지식이 도움 됩니다. 독점, 과점, 경쟁 제한 등을 다루는 산업조직론 지식이 공정거래 분야에 다양하게 쓰이거든요. 최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심판 단계나 법원의 판결 단계에서 경제학자가 작성한 경제분석이 빈번하게 쓰입니다. 지식재산권 분야는 공학 지식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의료소송,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서 의학, 약학 지식이 필요하겠죠.
금융 법조인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금융 쪽은 보통 자문 업무로 분류됩니다.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금융 거래와 관련된 업무, 금융기관의 인수합병 등의 업무를 하죠. 먼저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업무는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증권거래소에 금융기관이 준수해야 할 규제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금융거래 관련 업무입니다. 유동화 및 구조화 금융, 인수금융, IPO2), 신주발행, 사채발행, 집합투자기구 설립, 대출,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의 금융상품 거래를 관장하는 일을 하죠.
마지막으로 금융기관의 인수합병입니다. 금융기관 사이에 일어나는 인수합병과 PEF3)의 투자 활동과 관련된 업무를 합니다. 이처럼 금융기관의 모든 거래 활동에는 변호사와 로펌이 관여한다고 보면 됩니다.
변호사는 로펌에만 있다? NO!
변호사는 관련 법령을 해석하고 계약서, 증권신고서 등의 법률문서를 작성하고, 거래에 앞서 대상기업을 실사하며 거래구조 설계, 문제 설계, 해결책 제시 등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다만 금융 분야의 경우, IB4)가 투자 결정 및 거래구조 등을 주도하고 로펌은 의뢰인이 결정한 사항을 법률적으로 검토해주는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변호사와 로펌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주도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로펌이 아니라 금융기관이나 규제기관에서 근무하는 변호사도 많습니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의 회사에는 상당수의 사내 변호사가 근무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의 경우 변호사 자격이 있는 직원만 100여 명이 넘습니다. 한편, 변호사 자격을 갖추고 IB로 활동하는 분도 많습니다. 유명한 PEF인 보고펀드, MBK 등의 회사에는 한국 변호사 혹은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갖춘 분들이 왕성히 활동 중입니다.
금융기관의 사내변호사는 주로 금융거래에 있어 법률적 위험을 사전 통제하고 위법행위를 감시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역할은 로펌 변호사나 거래 담당자보다 제한적이라고 알려져 있고요. 금융감독원에서 일하거나 PEF, IB로 활동 중인 분들은 변호사로서 일하기 전에 그 기관의 담당자로 일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즉 해당 기관의 일반 업무를 담당하되 법률 전문성을 활용한 것입니다.
더이상 전공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금융 전문이 아니다 보니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만, 금융 분야에서 좋은 변호사가 되는 일은 변호사로서 일반적으로 필요한 자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금융 업무는 고도로 국제화, 표준화되어 있기에 대부분 업무가 영어로 이뤄집니다. 또 금융기관과 함께 일하는 만큼 금융시장의 구조, 용어, 거래 관행 등에 대해 익숙하면 좋겠죠.
로스쿨로 제도가 바뀐 만큼 앞으로 법학 전공 변호사는 거의 사라지고 다양한 전공의 변호사가 나올 거예요. 따라서 전공은 더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경제학을 전공했다고 금융 분야에 유리한 것도, 불리한 것도 아닌 거죠. 경제학에 흥미가 있다면 파산, 회생 분야나 공정거래 관련 분야도 괜찮습니다. 관심을 금융에만 한정하지 말고 공정거래, 인수합병, 소송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관심을 가지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경제학을 잘 모르지만, 경제학자와 변호사를 비교해보자면, 경제학자는 현상을 분석하고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사람이고 변호사는 사건을 해결하고 거래를 실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논리를 세우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변호사로서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 여전히 남아있는 SKY 캐슬 in 대형 로펌
마지막으로 멘티님께서 궁금해하셨던 이른바 SKY 로스쿨과 대형 로펌의 상관관계에 관해 이야기해볼게요. 현재 로스쿨 졸업생이 응시하는 변호사 시험은 본인 외에는 시험 점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로펌은 지원자의 실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대형 로펌이 주로 SKY 로스쿨 출신의 지원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재직 중인 태평양을 기준으로 신입 변호사 중 비 SKY 로스쿨 출신은 매해 30%도 되지 않습니다. 그 30%도 대체로 서울 지역 내의 대형 로스쿨 출신이죠. 지방에 있는 로스쿨 출신은 매년 1명씩 따로 선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어느 로스쿨에 진학하는지에 따라 대형 로펌에 진출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차이가 납니다. 멘티님께서 대형 로펌에 진출하고 싶다면, 학점 이외의 요소를 강화해 가급적 SKY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현실적인 마음입니다. 다만, 대형 로펌 만이 유일한 진로는 아니므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길게 써봤는데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잘 고민하셔서 멘티님께 가장 적합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멘티님을 응원합니다.
2) IPO : 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 외부 투자자가 공개적으로 주식을 살 수 있도록 기업이 자사의 주식과 경영 내역을 시장에 공개하는 것
3) PEF : Private Equity Fund. 사모펀드.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
4) IB : 기업공개, 증자, 회사채 발행, 구조화금융, 인수합병 등을 주간하고 자문하는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