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선사하는 게임을 만들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게임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유저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임을 만드는 건 더더욱 어렵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는 게임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위한 게임을 만들지 일명 타켓을 정해놓고 개발해야 한다. 타켓이 명확해졌다면 이제는 게임 안에 어떤 요소를 구현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할 차례다.
1. 역기획 – 벤치마킹, 분석력
인간의 창의성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 필수적인 능력이 바로 벤치마킹, 즉 분석력이다. 게임의 장르는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 정립된다. MMORPG, MORPG, 수집형RPG, 퍼즐 등등. 여기에 세밀하게 오픈 월드인지 아니면 캐릭터를 성장하는 형태인지에 따라 개발의 방향은 천차만별로 나누어진다. 그래서 초기 프로젝트의 설정과 유사한 다른 게임을 살펴보고 시스템을 모방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선 가장 기초가 되는 시스템은 스킬과 아이템이다.
모티브가 되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아이템의 능력치는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시스템으로 성장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면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분석하는 게임의 장점만 가져다 그대로 시스템을 만든다고 게임이 재미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어떤 난항을 겪었는지 시스템 분석을 토대로 미리 학습할 수 있다. 게임의 대규모 업데이트가 적용되면 기본 시스템에서 어긋나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억지로 넣은 듯한 콘텐츠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게임의 기본 시스템을 설계하는데 좋은 약이 된다.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분석을 하다 보면 하나 더 발견하는 내용이 있다. 유저 입장에서 접근하면 분명하게 보이는 불편한 요소도 개발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러한 편견과 편향의 요소를 발견하는 것도 분석 능력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언제나 제3자의 입장에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사소한 오류를 발견하여 리스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2. 보상 – 조작적 조건 이론 (행동 강화)
행동주의 이론을 살펴보면 두 가지가 존재한다. 고전적 조건 이론과 조작적 조건 이론. 고전적 조건 이론은 너무나 유명한 실험의 주인공인 파블로프가 제안한 이론이다. 무자극 조건과 무자극 반응은 동물, 인간에게 본능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장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입에 침이 고인다. 그러나 평소에 종이 울린다고 침을 흘리지 않는다. 파블로프는 이러한 무자극 조건과 자극 조건을 합쳐 자극 조건에도 반응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종을 치고 이후에 동물에게 음식을 주면 종과 음식이 혼합하여 둘 중 하나만의 자극으로 반응을 이끌어 낸다.
이와 다르게 조작적 조건 이론은 자극의 결과를 우선시하는 이론이다. 상자 안에 쥐와 지렛대를 두고 쥐가 지렛대를 누르는 행동의 보상으로 먹이를 주는 실험을 스키너는 고안했다. 지렛대를 누르는 순간 음식을 찾은 쥐는 실험을 할수록 지렛대를 누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행동을 하면 보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인식이 행동을 촉발했다. 이렇게 보상으로 행동의 강화가 발생하면 역으로 소거가 가능하다. 이를 체계적 둔감법이라고 부르는데, 지렛대를 누르는 행위로 인한 보상이 음식이었다면, 보상이 강화된 시점에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 보상으로 유도한다면 쥐는 더 이상 지렛대를 누르지 않는다. 보상으로 강화된 행동은 점차 소멸한다.
이러한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게임에 적용해볼 수 있다. 가장 익숙한 게임 시스템을 유저는 학습한다. 일일 퀘스트에서는 매일 얼마큼의 노력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경험한다. 이벤트 던전의 보상도 이와 유사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입장이 제한되어 있는 던전은 플레이하지 않으면 손해처럼 보상으로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 플레이해도 그만 아니어도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의 보상은 유저의 행동을 강화하지 않는다.
새로운 이벤트 던전과 보상을 설정할 경우에는 체계적 둔감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전에 제작한 던전의 보상이 새로운 이벤트 던전으로 모두 유저의 동기부여를 억제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콘텐츠보다 새로운 콘텐츠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의도로 설계한다면 문제가 되진 않는다. 대신 기존의 콘텐츠를 무시할 정도의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다. 이는 게임 내의 밸런스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수정해야 할 매우 리스크가 큰 작업이다.
3. 토큰 경제 – 시간과 재화 간의 연관성 생성
토큰 경제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커피 전문점에서 10번의 확인 도장을 받으면 한 번은 무료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이렇게 현금으로 전환할 수 없지만, 특별한 용도로 화폐 가치를 지닌 시스템을 토큰 경제라고 부른다. 게임 내 시스템은 토큰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 기본으로는 재화 경제가 있겠지만, 길드 재화, 우정 포인트, 명예와 같은 재화를 구축한다면 반드시 토큰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선 기본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재화, 젬, 시간으로 토큰 경제를 먼저 구축한다. 재화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게임의 경제 시스템이다. 재화를 얻을 수 있는 곳에서 시간 비례하여 얼마나 획득 가능한지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1분이라는 시간 동안 던전 플레이한 결과로 100골드와 아이템 1개(판매 가격 100골드)를 획득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1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200골드를 획득한 셈이다. 이렇게 기본 골드에 대한 재화 개념을 정립하면 젬의 가치를 정할 수 있다.
1젬으로 200골드를 구입할 수 있도록 설정하면 1젬은 결국 1분이라는 시간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시간이 부족하여 현금 결제로 자신의 아이템과 캐릭터를 강화하고 싶은 유저들이 게임 내 유료 결제로 100젬을 산다면 100분이라는 시간적 보상이 게임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한다.
재화의 소모 역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100골드를 소비하는 아이템 강화로 ‘공격력 수치’가 1이 증가한다면 공격력이 1증가하는 모든 콘텐츠는 100골드의 소비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캐릭터의 성장에는 300골드가 필요하다면 너무 과한 밸런스가 될 수 있다. 물론 아이템과 캐릭터의 콘텐츠의 접근 차이로 다른 가치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다른 영향력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렇게 골드와 시간의 관계에 입각하여 밸런싱을 구축하면 게임 내 토큰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우정 포인트를 100 모으면 살 수 있는 아이템의 판매 가격이 500 골드이면 우정 포인트는 5분의 가치를 지닌다. 길드 포인트는 어떤 방식으로 획득할 수 있을지 기획하는 단계에서 얼마큼 보상을 줄지 시간으로 체크해볼 수 있다. 길드 던전, 길드 경쟁을 통해 100분 플레이한 유저에게 10의 명예 보상을 한다면 100젬과 같은 재화의 가치를 지닌다. 1젬은 200골드를 구입할 수 있도록 설정했으므로 10의 명예 보상은 20,000골드와 같은 재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렇게 게임 내 재화의 관계를 규칙으로 만들고 아이템, 캐릭터의 능력치 강화, 상품 구매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 개념이 정립되면 각 콘텐츠의 중요도를 설정하고 유저에게 암묵적으로 개념을 학습하게 할지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한다.
4. 시나리오 – 인류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국을 형성한 여러 국가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지중해 근처의 초승달 지역은 무역이 활발하고 교류가 원활하여 문화가 발달한 도시 국가가 존재했다. 사람들이 빈번히 마주치는 그곳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타국의 침범을 연합해서 방어하는 전쟁에 대한 전략도 갖출 수 있었다. 그런 도시 국가가 점차 하나로 뭉쳐 제국의 모습을 보인다. 로마 시대에는 어떻게 넓은 땅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서 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돈, 수학, 메시지, 전달, 관리, 군사력이다.
중앙 집권식 통치 구조에서 영역의 확장과 지방의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올바로 선다. 강력한 왕권의 규칙과 제도를 전달하려면 우선 빠른 통신 수단이 필요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운송 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여 사람이 직접 메시지를 전달했다. 도중 유실되기도 하고, 하루에 사람이 갈 수 있는 거리는 한계점이 명확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도로를 만들어 최대한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중앙 집권을 강화하려면 우선 세금을 걷어야 했고, 그 세금은 고스란히 군사를 유지하는 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영역을 넓히며 국경 근처의 수비대에게 월급 개념으로 돈을 지불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강력한 왕권은 대제국을 관리했다. 수학과 건축의 발달로 다양한 건물을 만들어 국경과 왕권을 강화했다.
이러한 고대 제국의 요소를 게임상에 녹여낼 수 있을까. 길드 점령전과 같은 만렙 콘텐츠에 제국의 관리 시스템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영역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길드에서는 인원이 부족할 경우 길드 자금으로 용병을 모집하여 세력 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 통신 수단과 메시지는 수학의 발전과 건축물의 고급화로 시간을 줄이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도 영역에서 변방 지역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 영역마다 일정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수학과 건축이라는 길드 요소에 투자를 하여 업그레이드가 되었다면 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이렇게 심리학, 경제, 역사에 관련된 내용을 게임 상에 구현이 가능하다면 분명히 유저들은 흥미를 느낄 것이다. 게임 개발자라고 하여 IT 기술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서로 연결하는 창의성이야말로 즐거운 게임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