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님? 졸업한 지 1년이 넘은 26세 여자 멘티입니다. 요즘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울적해서, 혹여 멘토가 되어주실 분을 만나면 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잇다를 통해 멘토님을 뵙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멘토님 저는 6개월 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가, 공직은 제 성향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내려 놓고(개혁, 혁신보다는 보수를 추구하는 공직특성이 안 맞는다 판단), 사기업공채로 전향한 지 이제 4개월 정도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하반기 공채 시즌이 제 인생 첫 시즌이었는데, 대기업부터 중견, 강소까지 모두 떨어졌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어느 여행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와서, 인생 처음으로 정식면접도 보고, 최종합격도 했지만, 그마저도 인턴 6개월 후 평가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조건이 너무 걸려서 결국 입사를 포기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제 스펙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외국어나 관련 업무경험에 있어서는 크게 뒤처지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채에서 모든 곳에 떨어져 보고 나니, ‘이제 나는 도대체 어디에 지원해야 할까’, ‘나는 취업을 할 수 없는 걸까’하는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무엇보다 외국어가 유일한 특기라 ‘해외영업’이나 ‘무역’ 쪽을 ‘막연하게’ 지망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번 공채에서도 대부분 해외영업직으로 많이 썼었고, 이 직무T.O가 없는 곳은 인사직무를 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곳에 넣으면서도 마치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이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하나도 모른 채, 오로지 스펙 하나에 나를 끼워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해외영업 쪽 직무만 보지 않고, 마케팅이나 영업관리 등 다양한 직무를 좀 생각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그마저도 해당 직무로 진출하려면, 특히 마케팅의 경우 관련 업무 경험이나 공모전 수상경력 등이 매우 중시되는 필드라서 저 같은 비전공자에게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 같습니다. 직무를 전환하는 것도 어려워 보이고요.
그래도 저는 지금이라도 내가 솔직하게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탐구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틀린 생각일까요?
©️Sasha Freemind
글이 너무 넋두리처럼 되어 버렸네요..
정리를 해드리자면, 이제 와서 내가 무얼 잘할지, 하고 싶은지를 생각한다면 너무 늦은 건가요? 혹여 너무 늦은 게 맞다면,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그냥 지금까지의 스펙을 활용해서 어디든 들어가서 경력을 쌓는 게 맞는 건가요? 반대로, 늦은 게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해보고 접근해야 효율적일까요?
멘토님, 하시는 일이 매우 바쁘시겠지만, 시간 되실 때라도 꼭! 짧은 조언이라도 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멘티님. 처음 받은 질문이 제가 겪었던, 그리고 제 주변에서는 여전히, 꾸준히 겪고 있는 고민인 것에 안도감이 듭니다. 일단, 지금부터는 조급함을 잠시 내려두고 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1월에 태어난 저는, 남들보다 좀 더 빠르게 살라며 '빠른년생'의 특혜인 조기입학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가 단 한 번도 남보다 뒤처진 삶을 산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봤자 12년이지만요. 스무살 입시 실패로 반수를 해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때 처음 내가 내 친구들보다 늦춰지고 있음에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그 불안이 점점 옥죄며, 남들은 술을 마시고 하루를 날릴 때 대외활동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동기들이 MT를 떠날 때 침대에 누워 토익 RC 문제를 풀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잘 사는 거라고, 다시 앞서나가는 토끼 같은 삶을 살아보자고 늘 스스로를 다독였던 20대 초반, 저는 과연 행복했을까요?
©️Ian Schneider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멘티님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나는 누굴까?', '나는 뭘 좋아하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면 어떡하지?', '열심히 준비한 지금의 스펙과 경력이 결국 내가 원하는 삶과 다르다면?'과 같은 고민들요.
만약 그때, "이런 쓸데없는 고민들은 집어치우고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앞만 보고 달려라"고 나를 채찍질했다면, 지금 제가 이렇게 '멘토로서' 질문에 답변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말 빠른 편입니다. 운이 좋아요. 대기업을 1년 만에 때려치우고 취업 준비를 다시 하는 친구, 시간과 돈을 잔뜩 투자해 가며 도예라는 전공을 살려보려 했지만, 결국 학교 앞에 작은 꽃집을 개업한 친구,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다 3년 만에 작은 소극단 막내로 들어간 학교 선배- 그들보다 멘티님은 훨씬 빠른걸요.
빠르고 느린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마주하고 고민하고 있는 지가 중요하지요. 조금 느릴지언정, 이 시간이 멘티님의 깊이를 만들어 줄거라 자부합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요. 또 고민 있으면, 언제든 어려워 말고 질문 남겨주세요.
멘토님, 이렇게 좋은 답변을 빠르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에서 멘토님도 정말로 저와 같은 고민을 해오셨다는 게 느껴져서 그것만으로도 먼저는 위로가 되네요. 다음에도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